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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십년만에 티스토리에 로그인 했습니다.

행운의 네잎크로버도 주웠으니 행운이 가득하겠죠?

Posted by 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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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야구장이 꽉찼다. 

순위가 업치락 뒤치락 박빙의 경기를 펼치니 팬들은 신났다. 

프로야구 열기가 정말 대단하다. 

후배가 단장인 넥센이 3위라니 정말 엄청난 일이다. 

히어로즈 돈 벌고 있구나~ 

"조단장 축하해." 

조만간 또 한 명의 후배가 제9구단을 창단한다. 

엔씨소프트. 우리 대일고에 야구부가 있었나? ㅋ 

Posted by 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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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의도에서 고등학교 선배님들과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선배님들은 복국을 드시고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나는 지각해서 커피숍으로 직행 토스트 하나로 때웠습니다. ㅠㅠ

결국엔 우렁된장찌개 한그릇 더 먹었습니다. 

오후 내내 배터져 죽는 줄 알았습니다.

Posted by 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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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 골목 어귀에 위치한 조그만 가게에 장어구이 집이 들어섰다.
내 기억으로는 추석 즈음이었는데 그 가게엔 테이블이 고작 세 개 뿐이다.
주로 여관 촌 안에 위치한 카바레 손님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는데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허름한 미아리 카바레 손님들은 이 집에서 소주로 술기운을 올리고 카바레에 들어 간다.
어느 날 인가 집으로 귀가하던 중에 소주나 한잔 마실 생각으로 들려서 장어구이를 주문해봤다.
그런데 장어구이 맛이 실내 포차 수준치고는 너무 훌륭했던 것이다.

“아저씨 장어구이 소스를 직접 만드시나요?”라는 내 질문에

“네, 제가 직접 만듭니다.”라며 배시시 웃으며 대답을 한다.

그리곤 며칠 후 추석 연휴에 가족이 전부 모여 차례 지낼 음식을 만들며 동생과 나는
낮부터 얼큰하게 술에 취해있었다.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이른 잠에 들었던 동생과 나는 한참이나 늦은 밤 시간에야 술과 잠에서 깨었다.

“술 한잔 더 마셔야지?” 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동생이 답한다.

“응, 형 우리 나가서 먹을까? 종일 기름 냄새 맡았더니 지겹네.”

조금은 쌀쌀해진 날씨에 주섬주섬 옷가지를 걸치고 나가려는데 아내가 제동을 건다.
“뭘 나가서 돈 주고 먹어? 집에서 한잔 하지.”

그 말을 듣고 "당신도 제수씨도 같이 나가자 맥주 사줄 테니까.
"종일 전 부치는 냄새 맡았더니 머리가 다 아프다.”

아내는 아버님 어머님 눈치를 보느라 망설이는데 마침 제수씨가 끼어든다.
“그래요 형님 우리 가나서 맥주 한잔 마셔요. 바람도 쐴 겸.”

하지만 추석 전 날 이라 그런지 단골 술집들은 전부 문을 닫은 상태였고 나는 동생에게
"장어구이나 세꼬시는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장어구이 좋지.”라며

“어디 좋은데 있어?”라고 되 묻는 동생을 이끌고 골목 어귀 장어구이 집으로 갔다.

“추석연휴인데 장사 하시네요.”라며 아는 체를 하며 들어서자 사장님이 대답을 한다.

“네, 돈 벌어야죠. 어디 갈 형편이 못됩니다.” 고단해 보이는 얼굴로 대답하는 주인장 얼굴이 밝질 못하다

‘무슨 사연이 있나 보군.’ 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일단 장어구이를 주문하니 주인장이 세꼬시가 물이 좋으니 주문하라 권한다.
마침 아내와 제수씨가 회를 좋아하는지라

“그럽시다. 주세요.”라고 대답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술 자리 분위기를 달궜다.

저녁 11시 경이나 되었을까? 장어 집 주인의 부인인 듯한 아줌마가 가게로 들어온다.

“오늘 장사 어땠어요?”라고 묻는데 주인장은

“응, 첫 손님이야.”라며 힘없이 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상하다 저 아줌마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장어 집 아줌마가 너무 낯이 익은 것이다.

“아주머니 저 모르시겠어요? 왜 이리 낯이 익지?”라는 내 물음에 수줍어 대꾸도 못한다.
‘수줍음이 많은 여잔가 보군.’ 라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아니 이 사람이 마누라 옆에 두고 바람을 피울라고 수작 거네.”
평소에 농담 잘 못하는 아내의 너스레에 술자리엔 한바탕 폭소가 지나가고
동생이 그 집 장어구이의 맛에 푹 빠졌는지

“자주 오겠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자리를 파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 준비 하려면 어쩔 수 없기에.
자리를 뜨며 동생이 한마디 더 한다.
“아저씨 내일도 영업 하세요?”  

“왜? 너 내일 처가에 인사하러 안 가냐?”
라고 물으니 내일 모레 가겠다고 내일 밤 심심할 때 와서 한잔 더 해야겠단다.
아무튼 다음 날 차례를 지내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가 있는 암사동으로 향했다.
처가, 특히 장모와 사이가 별로인 나는 처가에선 항상 찬밥 신세다.
장인 장모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을 얻어 먹은 후 한쪽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어디냐?” 셋째 외삼촌이다.
셋째 외삼촌은 연휴 때면 항상 익산에 계신 외할머니 뵈러 가시기 때문에 서울에 계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디세요?” 라고 물으니
“응, 지금 평창동 큰 외삼촌 댁인데 이제 자리 파했다. 미아리에 가려는데 한잔 마시자.”

마침 외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손님 오는걸 꺼리시기에 이번엔 익산 가는걸 포기하고 큰 외삼촌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던 모양이다.

나는  “좀만 기다리세요.”라고 대답하고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처량하게 티브이나 보고 있는 남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내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

“그래, 난 애들하고 더 있다가 연휴 마지막 날 갈 테니 자기는 외삼촌 만나서 소주나 한잔 마셔.”라며 허락을 한다.

집으로 가면서 외삼촌께 전화를 걸었다.
“외삼촌 장어구이 좋아하시죠? 좋은 집 생겼어요.” 라고 장어 집 위치를 알려준 후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 집으로 나오라 했다.

추석날 누가 그런 집에서 음식을 먹겠는가? 역시 그 날도 손님 한 명 없이 우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저, 어제 말씀 하신 거요.”라며 장어 집 아줌마가 조심스레 운을 뗀다.
“네? 무슨 말씀?”내 대답에 조금 무안했던지 얼굴이 홍조를 띠며 상기가 되는 아줌마는

“아니에요.”라며 술 상을 차린다.

“아니, 정말 저랑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라고 다시 한번 묻자 아줌마는

“혹시 이 동네에서 오래 살지 않았나요? 저 위 8번지에서.” 라고 질문을 한다.

그러자 동생이 옆에 있다가 “네, 맞아요. 우리 8번지에서 오래 살았어요.”라며 내 대답을 뺏어간다.

“그럼 맞겠군요. 숭곡 국민학교 나오셨죠?” 라고 재차 물으며 답한다.

“저....오빠, 저 국민학교 일년 후배 점순이에요.
예전에 아파트에서 같은 과외 집에 다녔잖아요.” 라고 말은 하는 아줌마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런 점순이가 이렇게 변했구나.”
차마 남편이 있는 앞에서 더 친한 척은 하질 못하고 외삼촌과 나 그리고 동생은 시 덥지 않은 옛날 얘기를 나누며그 날의 술 자리를 마쳤다.
일년 후배 점순이를 그렇게 삼십 년 만에 만난 것이다.

물론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지금은 장어 집을 크게 넓혀서 이사를 했고
그 골목에서 제일 손님이 많은 음식점이 됐다.

Posted by 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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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 집이 많이 몰려 있는 곳은 주소지상 성북구 동선동이다.
그런데 미아리 고개 옆에 위치해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점집이 몰려있는 동선동을 미아리 점집이라 부른다.
텍사스부터 점집까지 미아리 사람들은 오해를 많이 받는다.
사실은 행정구역상 주소가 틀림에도 말이다.
그래서 요즘 강북구청에선 그런 오명을 씻을 요량으로 올바른 지명 찾기 캠패인을 벌이고 있다.
사실 점집은 미아리 고개 쪽 보다는 4호선 전철역 종점인 당고개에 많이 몰려있다.
당고개의 당자가 무당 당자다.
그런데 요즘은 미아리 점집이란 말이 통하게도 되었다.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한 점집들이 미아리 뒷골목에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한집 건너 한채일 정도다.
가정집을 개조한 절도 몇 개나 되고 무당집들이 엄청 늘어나더니 요즘은 역술인들의 사무실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보는 미아리 고개 옆길 예전엔 그 많던 점집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재개발을 준비중이다.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미아삼거리 뒷골목으로 점집들이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물론 미아리 뒷골목 또한 요즘 재개발 문제로 시끄럽다보니 3, 4년 뒤면 그 점집들은 전부 시외로 빠져나가겠지?
이 동네에서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집이 장군암이다.
이름을 보면 마치 암자 같겠지만 그냥 일반 점집이다.
장군암은 베니스 미용실 부부와 같은 다세대 연립 주택에 세들어 살고 있다.
장군암 아주머니는 미아리 지역에서 대단한 여장부다.
일단 덩치를 봐도 웬만한 사내들도 곰작 못할 정도이고 성깔이 급하고 힘이 장사여서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도 전혀 밀리질 않는다. 게다가 입은 얼마 험한지 그 욕설에 기가 질려 상대가 꼼짝을 못한다.
밤 시간이면 골목길에 늘어선 술집 어디에선가 술을 마시고 있던지 술집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싸움하는게 일반적인
그녀의 생활 패턴이다.

“이런 씨발, 누가 여기에 이런 걸 버렸어?”

또 동네가 시끄럽다.
장군암이 있는 연립주택 앞은 고물상이다. 당연히 가끔 고물이나 폐지들이 늘어서기 일쑤인데
이 아줌마는 그날 자신의 기분에따라 행동한다.
그 날은 기분이 별로 였나보다.
고물상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두분이 계시는 집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장군암 아줌마가 모를리가 없는데도 이 아줌마는 욕지기를 먼저 내뱉는다.
그럴때면 고물상 할아버지도 대꾸 안하고 조용히 집앞에 쌓인 물건들을 정리한다.

“야, 개새끼야, 너네 가게에서 나는 닭고기 비린내 때문에 내가 밥을 못쳐먹는다 씨발놈아.”

이 아줌마 또 뭔가 배알이 뒤틀리는 일이 생긴거다.
그날은 대림 박사장이 타겟이다.
한 성깔있는 박사장은 그냥 지나치질 않는다.

“아줌마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그리고 누가 일부러 그럽니까? 일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 할께요.”

하지만 장군암 아줌마는 막무가낸다.

“어서 이사가 이 개새끼야.”

결국엔 동네 순찰을 돌던 경찰들이 나서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 해 여름 내내 대림 닭고기 박사장은 장군암 아줌마한테 시달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박사장은 돈을 많이 벌게되어 미아4동 공영주차장 앞에 큼지막한 점포을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장군암 아줌마는 지금은 부업으로 장미식당이라는 실내 포장마차를 열었다.

나는 그 집에 손님이 있는 걸 한번도 못봤다.

Posted by 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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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야기가 떠난 자리에 생긴 술집 <취하는 건 바다>



미아리엔 텍사스가 없다.


"어디에 사세요?"라는 사람들의 질문에 나는 당연히
"네 미아리에 살아요."라고 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정말요? 자주 가시겠네요?"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수다.
하지만 내 고향 미아리엔 그들이 상상하는 사창가 속칭 <미아리 텍사스>는 없다.
텍사스는 주소상으로 하월곡1동 88번지다.
월곡동은 성북구이고 미아리는 강북구이다.
지금은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로 분구가 되었지만 예전엔 세개구가 전부 도봉구였다.
상계동, 창동 등이 재개발 되면서 인구가 많이 유입되어 분구가 되었다.
내 나이 44살, 나는 미아삼거리라는 곳에서만 44년을 살았다.
강산이 4번 이상 변한 셈이다.
정말 많이 변했다.
야금야금 조금씩
스카이라인이 전부 반듯하게 수평으로 바뀌기 전 이곳에선 어느 위치에서나
삼각산과 도봉산의 멋진 스카이 라인을 감상할 수가 있었다.
지금은 난개발의 후유증과 속속 산 위로 들어서는 아파트들 때문에 그 청량한 모습을 보기 힘들다.
우리 동네 미아삼거리는 중독성이 강한 동네인가보다.
이 곳에 이사와서 자리 잡으면 좀체로 나가질 않는다.
이 동네는 값싼 집세 때문인지 호남민들이 유난히 많다.
선거철만 되면 열우당, 민주당아니면 관심도 갖질 않는다.
43년을 이동네에서 살다보니 참 다양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티브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만한 사연을 갖고 있다.






황금성이 떠난 자리엔 박광덕 막걸리집이 생겼다.



동하는 꽤 오랜 기간을 샘터사에서 근무하다 얼마 전 독립한 유능한 기획자이다.
심지가 곶은 출판 기횢가며 소위 의리파인데 시인이기도 하다.
만나면 항상 내 주변 얘기를 나누며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는데 며칠 전 만난 동하가
"형 주변 얘기도 참 재미있던데, 편한 마음으로 옮겨보세요."라는 제안을 했다.
일단 내 머리속에서 얼기설기 엮여있는 인물들을 뽑아보니 22명이 가닥이 잡힌다.
가만 그들을 살펴보니 마침 그물 처럼 엮여있는 그들의 관계가 참 재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젯밤 처음으로 꺽수씨 이야기 부터 풀어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 출판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편한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도록 정리해보려 한다.
미아리에 44년을 산 것도 보람이 될지는 나중 일이지만.





대지극장 뒷골목 속칭 여관촌




얼마 전부터 시작한 사진 작업 의 또 다른 서술법이 될 듯하다.
요즘 마음이 무겁다.
욕심은 앞서는데 몸과 마음이 욕심만큼 움직여주질 않아서 그런 듯하다.
마감이 다가오는 예술인들 이야기는 삼분의 일도 진행을 못했는데, 걱정만 앞설뿐 글발이 당췌 안선다.
쉬어가는 마음으로 미아리 이야기를 조금씩 정리해볼 생각이다.
이류건달 꺽수, 욕쟁이 아줌마 팽자, 잉잉 약사 아저씨, 여관 골목 김씨아저씨 등
나와 직 간접으로 인연이 된 미아리 사람들의 개성 강한 이야기들....
Posted by 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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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요일, 사무실로 식구들을 불러 중국 음식 외식을 했다.



처음 자장면을 먹었던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어머님의 손에 이끌려 동네에 새로 생긴 중국집엘 가봤다.
미아리 촌 구석에도 자장면 집이 생긴 것이다.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즈음일까 
그러니까 9살 때 나는 처음으로 그 중국식 국수인 자장면이란 음식을 처음으로 맛 보았던 것이다.
지금 내 나이 마흔넷이니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의 일이다.
어머님은 그 전에도 자장면을 맛 보셨던 것 같다.
나는 뭐가 맛있는지 어떤 걸 시켜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어머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주저없이
자장면 두 그릇을 주문하셨다.
굵은 국수 면발에 검은 색 쏘스는 당시 내 눈엔 너무 엽기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머님이 비벼 주시던 비빔국수나 멸치 국물 우려낸 국수 혹은 칼 국수 정도나 먹어본 나는
차마 자장면이 음식으로 보이질 않았다.
어머님이 두 손으로 젓가락을 한짝씩 잡고 쓱쓱 비벼서 내 앞에 자장면을 밀어 주셨는데도
나는 한 젓가락도 입에 담지 못했다. 냄새는 그럴 듯한데도 말이다.
어머님이 한 젓가락 입에 넣으시는 걸 보고서야
나는 조심스럽게 마치 쓴 약이라도 먹듯이 자장면을 입에 넣었다.
그러고 나선 나는 감탄을 하고 말았다.

"엄마, 너무 맛있어."

자장면 한 그릇이 초등하교 2학년 짜리에겐
그리 적은 양이 아님에도 나는 한 그릇을 뚝딱 먹어치우고 말았다.
그 후로 상을 타오거나 심부름을 하거나 아무튼 아버님 어머님의 맘에 드는 행동을 한 후엔
자장면 한그릇이 내겐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처음 봤을때 느꼈던 맛없어 보이던 굵은 면발 그리고 거무튀튀한 자장 쏘스가
최고의 음식이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요즘도 자장면을 이삼일에 한 그릇씩 먹는다.
사무실 직원들이 "질리지 않으세요 "라고 물으면
"세상에 자장면이 어떻게 질릴 수가 있지 "라고 되 묻곤한다.
물론 직원들은 그런 내가 무척이나 신기한가 보다.
태어나자마자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랐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은 나를 시골에 보낼 수 밖에 없으셨던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이 되어서야 집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었고
입학식 전날 나는 서울에 올라와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서울에 올라온 나는 자장면을 먹어 봤을 리가 없던 것이다.
어린 시절을 부모와 떨어져 생활할 수 밖에 없던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세살, 네살 터울의 둘째나 세째 동생들에 비해 나는 호강을 하였다.
가끔 어머니는 동생들 몰래 나를 전기구이 치킨 집에 데려가 통닭 한마리를 사 먹이곤했다.
물론 어머니는 시큼한 무 조각만 몇개 씹으시면서
항상 "난 속이 배가 안 고프니 너나 많이 먹으렴"이란 말을 빼먹지 않으셨다.
그땐 그리도 맛있던 전기구이 통닭이 요즘은 왜 이리 별로인지.

아무튼 나는 오늘 점심 식사도 자장면을 주문했다.
몸에 좋건 말건 그건 알고 싶지않고

Posted by 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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