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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5년 전 골목 어귀에 위치한 조그만 가게에 장어구이 집이 들어섰다.
내 기억으로는 추석 즈음이었는데 그 가게엔 테이블이 고작 세 개 뿐이다.
주로 여관 촌 안에 위치한 카바레 손님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는데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허름한 미아리 카바레 손님들은 이 집에서 소주로 술기운을 올리고 카바레에 들어 간다.
어느 날 인가 집으로 귀가하던 중에 소주나 한잔 마실 생각으로 들려서 장어구이를 주문해봤다.
그런데 장어구이 맛이 실내 포차 수준치고는 너무 훌륭했던 것이다.

“아저씨 장어구이 소스를 직접 만드시나요?”라는 내 질문에

“네, 제가 직접 만듭니다.”라며 배시시 웃으며 대답을 한다.

그리곤 며칠 후 추석 연휴에 가족이 전부 모여 차례 지낼 음식을 만들며 동생과 나는
낮부터 얼큰하게 술에 취해있었다.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이른 잠에 들었던 동생과 나는 한참이나 늦은 밤 시간에야 술과 잠에서 깨었다.

“술 한잔 더 마셔야지?” 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동생이 답한다.

“응, 형 우리 나가서 먹을까? 종일 기름 냄새 맡았더니 지겹네.”

조금은 쌀쌀해진 날씨에 주섬주섬 옷가지를 걸치고 나가려는데 아내가 제동을 건다.
“뭘 나가서 돈 주고 먹어? 집에서 한잔 하지.”

그 말을 듣고 "당신도 제수씨도 같이 나가자 맥주 사줄 테니까.
"종일 전 부치는 냄새 맡았더니 머리가 다 아프다.”

아내는 아버님 어머님 눈치를 보느라 망설이는데 마침 제수씨가 끼어든다.
“그래요 형님 우리 가나서 맥주 한잔 마셔요. 바람도 쐴 겸.”

하지만 추석 전 날 이라 그런지 단골 술집들은 전부 문을 닫은 상태였고 나는 동생에게
"장어구이나 세꼬시는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장어구이 좋지.”라며

“어디 좋은데 있어?”라고 되 묻는 동생을 이끌고 골목 어귀 장어구이 집으로 갔다.

“추석연휴인데 장사 하시네요.”라며 아는 체를 하며 들어서자 사장님이 대답을 한다.

“네, 돈 벌어야죠. 어디 갈 형편이 못됩니다.” 고단해 보이는 얼굴로 대답하는 주인장 얼굴이 밝질 못하다

‘무슨 사연이 있나 보군.’ 라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일단 장어구이를 주문하니 주인장이 세꼬시가 물이 좋으니 주문하라 권한다.
마침 아내와 제수씨가 회를 좋아하는지라

“그럽시다. 주세요.”라고 대답하고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술 자리 분위기를 달궜다.

저녁 11시 경이나 되었을까? 장어 집 주인의 부인인 듯한 아줌마가 가게로 들어온다.

“오늘 장사 어땠어요?”라고 묻는데 주인장은

“응, 첫 손님이야.”라며 힘없이 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상하다 저 아줌마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장어 집 아줌마가 너무 낯이 익은 것이다.

“아주머니 저 모르시겠어요? 왜 이리 낯이 익지?”라는 내 물음에 수줍어 대꾸도 못한다.
‘수줍음이 많은 여잔가 보군.’ 라고 생각하는데 아내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아니 이 사람이 마누라 옆에 두고 바람을 피울라고 수작 거네.”
평소에 농담 잘 못하는 아내의 너스레에 술자리엔 한바탕 폭소가 지나가고
동생이 그 집 장어구이의 맛에 푹 빠졌는지

“자주 오겠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우리는 자리를 파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 준비 하려면 어쩔 수 없기에.
자리를 뜨며 동생이 한마디 더 한다.
“아저씨 내일도 영업 하세요?”  

“왜? 너 내일 처가에 인사하러 안 가냐?”
라고 물으니 내일 모레 가겠다고 내일 밤 심심할 때 와서 한잔 더 해야겠단다.
아무튼 다음 날 차례를 지내고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가 있는 암사동으로 향했다.
처가, 특히 장모와 사이가 별로인 나는 처가에선 항상 찬밥 신세다.
장인 장모께 인사를 드리고 저녁을 얻어 먹은 후 한쪽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어디냐?” 셋째 외삼촌이다.
셋째 외삼촌은 연휴 때면 항상 익산에 계신 외할머니 뵈러 가시기 때문에 서울에 계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어디세요?” 라고 물으니
“응, 지금 평창동 큰 외삼촌 댁인데 이제 자리 파했다. 미아리에 가려는데 한잔 마시자.”

마침 외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손님 오는걸 꺼리시기에 이번엔 익산 가는걸 포기하고 큰 외삼촌 댁으로 차례를 지내러 갔던 모양이다.

나는  “좀만 기다리세요.”라고 대답하고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처량하게 티브이나 보고 있는 남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내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에

“그래, 난 애들하고 더 있다가 연휴 마지막 날 갈 테니 자기는 외삼촌 만나서 소주나 한잔 마셔.”라며 허락을 한다.

집으로 가면서 외삼촌께 전화를 걸었다.
“외삼촌 장어구이 좋아하시죠? 좋은 집 생겼어요.” 라고 장어 집 위치를 알려준 후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그 집으로 나오라 했다.

추석날 누가 그런 집에서 음식을 먹겠는가? 역시 그 날도 손님 한 명 없이 우리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저, 어제 말씀 하신 거요.”라며 장어 집 아줌마가 조심스레 운을 뗀다.
“네? 무슨 말씀?”내 대답에 조금 무안했던지 얼굴이 홍조를 띠며 상기가 되는 아줌마는

“아니에요.”라며 술 상을 차린다.

“아니, 정말 저랑 어디서 보지 않았나요?” 라고 다시 한번 묻자 아줌마는

“혹시 이 동네에서 오래 살지 않았나요? 저 위 8번지에서.” 라고 질문을 한다.

그러자 동생이 옆에 있다가 “네, 맞아요. 우리 8번지에서 오래 살았어요.”라며 내 대답을 뺏어간다.

“그럼 맞겠군요. 숭곡 국민학교 나오셨죠?” 라고 재차 물으며 답한다.

“저....오빠, 저 국민학교 일년 후배 점순이에요.
예전에 아파트에서 같은 과외 집에 다녔잖아요.” 라고 말은 하는 아줌마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런 점순이가 이렇게 변했구나.”
차마 남편이 있는 앞에서 더 친한 척은 하질 못하고 외삼촌과 나 그리고 동생은 시 덥지 않은 옛날 얘기를 나누며그 날의 술 자리를 마쳤다.
일년 후배 점순이를 그렇게 삼십 년 만에 만난 것이다.

물론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지금은 장어 집을 크게 넓혀서 이사를 했고
그 골목에서 제일 손님이 많은 음식점이 됐다.

Posted by 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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